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매우 교훈적인 실패 사례

by 까칠아빠 2023. 5. 3.
반응형

여기에선 신중한 투자자라면 위험 신호를 파악하여 회피할 수 있었던 실패 사례 4가지를 살펴본다.

월스트리트의 안 좋은 관행이 문제 이긴 하지만 그런 관행들이 대부분 투자자 본인의 실수와 욕심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글에서 살펴볼 다음의 4개 기업의 참혹한 실패 사례는 투자자와 투기꾼은 물론 투자전문가, 분석가, 신탁회사, 펀드매니저에게도 도움을 준다.

 

1. 펜 센트럴 철도

펜 센트럴 주식이나 채권을 소유한 이들이 재무 구조만 기본적으로 살펴보았더라도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었다. 취약한 재무 구조에 비해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높았기 때문이다.

 

2. 링고 - 템코 - 보트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실패를 피하기 어려운 회사였다.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 지원도 참혹한 결과에 일조했다.

 

3. NVF

중소기업이 특별한 회계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부채를 동원해 자사보다 규모가 7배나 높은 회사를 인수했다.

 

4. AAA 엔터프라이즈

중소기업이 프랜차이즈라는 말을 앞세워 주식을 공모했지만 2년도 안되어 붕괴했다. 상장 초기에는 주가가 2배나 뛰어올랐다.

 

펜 센트럴 철도

1. S&P가 발행하는 채권 가이드에 따르면 1968년 이 회사의 이자보상률은 1.91배였다. 증권 분석에 따르면 철도회사의 이자보상비율은 세전 5배, 세후 2.9배 이상이어야 한다.

 

펜 센트럴은 11년 동안 법인세를 내지 않았으므로 세후 이자보상비율이 2배에도 못 미친다.

 

2. 장기간 법인세를 내지 않았기에 회사가 발표한 수익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3. 펜 센트럴 채권 보유자들은 1968~1969년에 추가 비용 없이 더없이 안정적인 채권으로 바꿀 수 있었다.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던 펜실베니아 일렉트릭 채권은 세후 이자보상비율이 4.2배여서 이 채권으로 바꿨다면 커다란 손해를 면할 수 있었다.

 

4. 1968년 펜 센트럴이 공개한 EPS는 3.8달러였고 고가가 86.5달러, PER 24였다. 법인세를 내지 않는 회사로서는 엄청나게 높은 PER이었다.

 

5. 1966년 펜 센트럴 주가가 86.5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합병 손해 비용으로 1971년 주당 12달러가 줄어들 예정이었다.

 

6. 펜 센트럴은 운송비율이 좋지 않았다. 1968년 이 회사의 운송비율은 47.5%였고 노퍽 앤드 웨스턴은 35.2%였다.

 

7. 특이한 회계 방식이 있었다.

 

교훈

유능한 분석가, 투자자문사, 신탁회사, 펀드매니저였다면 1968년 이후 펜 센트럴 주식이나 채권을 매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석가는 먼저 기본적인 분석을 충실히 해야 한다.

 

링고 - 템코 - 보트

1. 1961년 회사는 온갖 비용과 충당금을 한 번에 인식해서 이후 실적을 높였다.

 

2. 1966년 말 주당 순유형자산은 7.66달러였지만 1967년 주가는 순유형자산의 22배에 이르렀다. 하자만 우선주, 영업권, 채권할인발행자금을 빼면 보통주의 가치는 고작 주당 3달러였다.

 

3. 1967년 말 두 은행이 주식을 매도하자 주가는 고가 169.5달러를 기록하고 3년 이내에 7.125달러로 내려앉았다.

 

4. 1969년 연결부채가 18억 6,900만 달러에 달했다.

 

5. 1969년과 1970년 손해가 회사 창립 이후 올린 수익 합계를 초과했다.

 

교훈

이 회사는 이자보상비율을 비롯한 재무 비율이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는데 은행들이 과도하게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NVF

1. NVF는 자사보다 규모가 7배나 높은 샤론 스틸을 합병하여 엄청난 부채를 기록하고 적자 전환했다.

 

2. 이연자산을 빼면 보통주의 실질 가치는 주당 23.71달러에서 3달러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회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준 신주인수권의 가치가 이 회사 시가총액을 앞질렀다.

 

3. 이 외에도 회사는 다양한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

 

AAA 엔터프라이즈

1.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AAA 엔터프라이즈 설립자 제이키 윌리엄스는 1969년 주식 50만 주를 주당 13달러에 공모했다. 1968년 이전 최대 이익이 주당 0.07달러였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즉각 28달러로 올라 PER 115를 나타냈다.

 

윌리엄스는 보유 주식을 BPS의 20배에 팔아치워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투자자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2. 같은 해 회사는 주당 1.49달러 손실을 일으켜 BPS가 0.08달러로 줄었다. 그런데도 1969년 종가는 8.5달러였다.

 

3. 1970년 상반기에도 이 회사는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고 1971년 1월 파산신청 했으며 1월 종가는 0.5달러였다.

 

교훈

투기에 빠진 대중은 구제불능이다. 이들은 유행하는 테마주라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매수하려 한다. 책임감 있는 투자사라면 이런 실패할게 뻔한 회사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증권거래위원회는 공모기업의 정보공개 외에도 좀 더 구체적이고 강한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 현재 월스트리트의 안 좋은 관행들을 혁신하려는 활동이 있지만 나쁜 관행의 대부분은 투자자 본인 욕심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응형

댓글